세종대왕릉을 처음 찾아간 날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필리핀 보라카이에서 스파를 하며 살아온 지 36년,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한 달분의 약을 처방받았다. 다음 진료가 7월 2일로 잡혀서, 6월 29일에 보라카이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병원 가기 전날인 7월 1일, 하루가 비었다. 이왕 온 김에 평소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을 가기로 했다. 세종대왕릉이다.

챗지피티한테 물어보고 길을 나섰다

요즘 나는 어디를 가기 전에 챗지피티한테 먼저 물어본다. 가는 방법이 어떻게 되는지, 미리 알고 가면 좋은 게 뭔지. 그다음에 네이버지도를 켜고 길을 나선다. 60대가 무슨 AI냐 하는 분들도 있는데, 써보면 안다. 이만한 여행 친구가 없다. ㅎㅎㅎ

세종대왕릉은 경기도 여주에 있다. 이름은 영릉. 세종대왕과 소헌왕후가 함께 잠들어 계신 곳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필리핀에서 36년을 살다 보니 정작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외국 손님들이 한국에 대해 물어보면 제대로 답을 못 할 때,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직접 가보기로 한 것이다.

수요일의 행운, 무료입장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내려고 지갑을 꺼냈는데, 마침 수요일이라 무료입장이라고 했다. 뜻밖의 행운이었다. ㅎㅎㅎ 목소리 때문에 온 한국에서 이런 선물도 받는구나 싶었다.

능으로 가는 길은 조용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소나무 숲길을 천천히 걸었다. 걷기 좋은 길이다. 서두를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훈민정음만 아는 줄 알았는데

세종대왕 하면 나는 훈민정음만 떠올렸다. 그런데 현장을 둘러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전시된 유물들을 보니 해시계, 측우기, 물시계 같은 과학 기구들이 줄줄이 나온다. 하늘을 관측하고, 비의 양을 재고, 시간을 알렸다. 음악을 정리했고, 농사짓는 법을 책으로 펴냈다. 전부 백성의 생활을 위한 것들이었다. 글자만 만드신 게 아니라, 백성이 먹고사는 문제 전부를 붙들고 계셨던 거다. 육백 년 전에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 ‘훈맹정음’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이름만 보고 세종대왕이 만드신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훈맹정음은 송암 박두성 선생이 1926년에 만든 한글 점자다. 시각장애인들이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만든 것인데, 백성을 사랑한 훈민정음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세종대왕이 뿌린 씨앗이 오백 년 뒤에 또 다른 열매를 맺은 셈이다. 이런 것도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다.

이제라도 하나씩, 직접

돌아 나오는 길에 능을 한 번 더 올려다봤다. 목소리를 잃고 찾아온 한국에서, 말 대신 글자를 만드신 분 앞에 서 있다는 게 묘했다.

한국을 너무 몰랐던 나다. 이제라도 하나씩 직접 찾아가 보고 배우려 한다. 다음에 한국에 올 때도 병원만 다녀가지 않고, 몰랐던 곳을 한 군데씩 찾아갈 생각이다.

세종대왕님, 우리에게 한글과 수많은 지혜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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