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 여행지의 숙소에서 노트북을 열고 영상 편집을 하고 있었다.
한라산에서 찍어온 클립들을 타임라인에 올려놓고, 자르고, 붙이고, 자막을 넣다가 문득 손이 멈췄다. 창밖은 아직 캄캄한데, 나는 며칠 전의 장면들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는 블로그 글을 영영 못 쓰겠구나.
영상 편집은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다. 한 편을 만들다 보면 새벽이 다 지나가고, 글을 쓸 기운은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는 글을 먼저 쓰기로. 영상은 이미 지나간 장면을 이어 붙이는 일이지만, 글은 오늘 내 하루의 의미를 붙잡는 일이기 때문이다. 장면은 카메라가 기억해 주지만, 생각은 적어두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날 무엇을 느꼈는지, 왜 그 길을 걸었는지는 글로만 남는다.
글을 먼저 쓰기로 하고 나니, 며칠 전 산에서 있었던 일이 자꾸 떠올랐다.
삶은 여행과 같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나는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태고 싶다. 여행은 산행과 같다. 산을 오르다 보면 참 많은 사람을 만난다. 성판악 코스를 오르던 그날도 그랬다. 어떤 사람은 성큼성큼 나를 앞질러 먼저 올라갔고, 어떤 사람은 한동안 같은 속도로 나란히 걸으며 몇 마디를 나눴다. 어떤 사람은 내려오는 길에 “얼마 안 남았어요” 한마디를 건네고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날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발길을 돌렸지만, 다른 날에 정상까지 올라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붙잡을 수 없었고, 붙잡을 이유도 없었다. 각자 자기 속도가 있고, 자기 길이 있으니까.
인생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오랜 친구,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 함께 일하는 직원, 여행지에서 잠깐 마음을 나눈 사람들까지. 모두 산길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오래 나란히 걸어주고, 어떤 이는 한 굽이만 함께하고 갈림길에서 헤어진다. 어떤 이는 인사 한 번이 전부다. 젊을 때는 그게 서운했다. 왜 먼저 가느냐고, 왜 여기서 헤어지느냐고 마음속으로 원망도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됐다. 그 사람이 나를 떠난 게 아니라, 그저 자기 길을 간 것뿐이라는 걸.
그러니 붙잡지 않기로 한다. 원망하지도 않기로 한다. 오래 함께 걸어주는 사람에게는 감사하고, 잠깐 스쳐 간 사람에게는 그 순간의 온기를 기억하면 된다. 짧게 스쳐도 의미가 없는 만남은 없었다. 내려오는 사람의 “얼마 안 남았어요” 한마디가 그날 내 다리에 힘을 준 것처럼, 잠시 함께 걸은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오늘도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상은 풍경을 남기지만, 글은 마음을 남긴다. 오늘 스쳐 간 사람들, 오늘 걸은 길, 오늘 든 생각을 적어두지 않으면, 그것들은 산 아래 안개처럼 흩어져 버린다. 대단한 글이 아니어도 좋다. 새벽에 앉아 그날의 의미를 한 줄이라도 붙잡아 두는 것. 그게 여행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일이다.
산은 아직 거기에 있고, 길은 계속 이어진다. 만나는 모든 사람이 스쳐 지나가도 괜찮다. 다 지나가고, 나는 오늘도 내 속도로 걷는다.
